2022년 2월 5일 토요일

부헨발트의 동물원

 부헨발트의 동물원


백현주

 아름다운 바이마르 시내 가까운 곳에 너도밤나무숲이라는 뜻의 부헨발트가 있다. 그곳을 가는 길은 참으로 잘 닦여 있는데 무리해서 잘 닦여 있는 도로는 어느 나라든 항상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이므로 묻지 않기로 한다. 부헨발트는 나치가 건설한 가장 큰 강제 노동 수용소 중 하나이다. 슈츠슈타펠(SS)은 1937년 7월, 독일 바이마르에서 북서쪽으로 단지 5km 떨어진 곳에 부헨발트를 개소하였다. 고전주의의 고장, 바이마르에 사는 독일인들은 그렇게 가까운 곳에 강제수용소가 있었던 것을 전쟁이 끝나고 난 후 그제야 알았다고들 한다.

 

 모든 수용소는 각 수용소만의 슬로건이 있는데 이는 입구에 적혀있다. 문에는 내부에서 읽을 수 있게 ‘Jedem das Seine'라고 적혀있다. ‘자신이 대우 받을 만큼 받는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당신의 삶의 가치는 이 안에서 받는 만큼이라는 뜻이다. 부헨발트는 절멸 수용소가 아닌 노역 수용소였지만 이는 노동을 통한 절멸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유를 알고 도착했다. 일을 할 사람, 일을 시킬 사람 그리고 이미 도착하기도 전에 죽은 모두가 말이다. 유난히도 해가 밝은 날에 도착한 나는 그 넓은 곳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땅이 주는 절망감에 쉽지 않은 걸음을 계속했다. 절망감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이미 패망을 느끼고 모든 증거를 인멸한 다른 수용소들과는 다르게 유난히도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생체실험부터 시작해서 소각장까지 모든 곳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다. 평범해 보이던 돌 터에서도 오디오 가이드가 내 귀에 진실을 설명해 주는 순간 갑자기 모든 곳이 흑백으로 변다. 그 중, 내 몸 모든 구멍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오는 기분이다. 그렇게 내 콧속에 피비린내가 없어지지 않던 몇 시간 후 출구로 나가기 직전 멈춘 곳에서 피비린내가 갑자기 싹 사라졌다. 철창 밖에 또 다른 철창이 보인다. 동물원이다. 

 

 나치는 수용소 관리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수용소 옆에 동물원을 만들었다. 소규모의 동물원은 화려하진 않지만, 새장과 곰, 원숭이들이 있었다. 남아있는 사진을 보면 나무와 물통이 내부에 있고 두 마리의 곰들이 재롱을 부리듯 서로를 안고 있다. 동물원은 그들 상식엔 기분이 나쁘라고 세운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자존심에 모멸을 심어주는 행위로 나치는 스스로 가족까지 동반했다. 관리원의 가족들은 레저 삼아 동물들도 구경하고 아름다운 너도밤나무숲도 구경했다. 여러 층위의 창살 밖에 이들이 존재했다. 구획은 어디가 내부이고 외부인지 명확했다.

 

동물원의 창살 밖, 건너의 창살 안 사람들은 동물을 구경하는 자신을 향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향해 쓰여진 글귀 ‘Jedem das Seine’을 번갈아 보며 오늘 그들의 노동이 창살 밖의 창살 안 동물들만큼은 대우받을 정도였을까. 그 동물들과 자신 중 누가 더 자신의 가치를 합당하게 인정받고 있을까. 창살 안에서 던진 나의 질문들은 아무리 던져도 이 구획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가 안에 있고 어디가 밖인지 모를 그 정체가 나 스스로인지 바깥의 나치인지, 그 바깥 안의 동물들인지 혼란은 더해졌다. 그 구획은 어디가 내부이고 외부인지 불명확해졌다.
 
내가 동물원을 바라보는 그 순간, 더이상 피비린내가 나지 않았던 이유는 이 곳이 실이 아닌 현실이 었기 때문이다. 초현실은 고통이나 절망 또한 타자화 되어 자신이 감당하는 현재가 슬픔이 아닌 통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렇게 부헨발트 안에서 동물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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