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9일 목요일

이상한 상식들

 군대에서 성폭행을 당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가해자측 변호사가 피해자에게 동성애자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니라고 했지만,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혈안이 되었던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동성애자면 성폭행을 당해도 되는것임? 

동성애자면, 잠재적피해자/가해자 라는 말인가?
이거 그 여자 치마가 너무 야해서 성관계를 원하는 것 같았다 식 아님? 

여기에 달린 댓글에. 

차별금지법(동성애법) 통과시키려고 더불어 민주당에서 혈안이 되어 있고 군대 내 성관계 막는 군형법92조6힝을 폐지한다고 쌩쑈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악법 통과시키고 필요한 법은 폐지시키면 이 나라 동성애자 천국 되는 거 시간 문제 아닙니까?
아들 잘 키워서 군대 보냈다가 이런 봉변을 당해도 판결이 거지같이 나오고! 정말 차별금지법 절대 통과시키면 안 됩니다.
군형법 92조6항도 잘 보존해야 합니다.
서로서로 알려서 우리 나라 지킵시다.
힘드셨을 텐데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달려있는데, 

군대 내 성관계를 막는 형법이라는 것 자체도 웃기지만, 아들 잘 키워서 군대 보냈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는게 동성애자 라서 인것인가? 게이든 게이가 아니든 아들을 우선 잘 키워서 어떤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 아닌가? 

잠깐, 그럼 여기서 우리 나라 몇몇 남자들은 여자도 군대에 가야한다는 것인데,

1. 동성애자 = 성폭행 하는 사람
이라면 마냥
2. 건강한 남성과 여성이 함께 군대 생활 하는데 왜 장중사 사건 (공군 성추행) 같은게 터지는 거임?

여기서 또,

1. 나도 여성으로서 군대에 가고 싶다. 같은 방식으로 나라를 지키고 사회생활을 하고싶다. 그렇게 되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이도 같을테고, (러시아 하는 짓을 보면) 나라도 지키고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그럼 여성이 아기를 낳고 사회생활을 접어야 하는 시간동안 남자도 똑같이 하는 것이죠?
1년 임신해서 뼈와 피부, 근육 다 틀어지고 골반 다 틀어져 가면서 아기 낳은 후에 1년동안 모유수유 하는 만큼 남자도 여자와 함께 2년간 사회에서 격리되어 집안에서 집안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거 맞지요? 그리고는 동시에 회사와 사회로 돌아가서 아기가 18살이 될때까지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거죠?
남녀 모두 2년 군대 + 2년 공동육아.

(내가 왜 비혼인 이유)

이 댓글, 이 기사, 모든 것이 이미 차별금지법이 왜 있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2022년 5월 7일 토요일

2022년 3월 14일 월요일

모두들 각자의 박자감 속에 살고있습니다.

 

월간 윤종신 기고 글 -
2020년 9월 16일
https://yoonjongshin.com/archives/5598

Glasgow Mega Snake – Mogwai
모두들 각자의 박자감 속에 살고있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관해 쓰려고 했더니 당신은 사실 내가 아닌 2인칭이고 그 중 내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나의 박자감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된 곡을 선택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 중 Mogawi
Mogwai Fear Satan 혹은 Glasgow Mega Snake 를 떠올렸는데 글을 쓰는 지금 시기에 더 어울리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노래에 정말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정도 걸었으면 맛집이 나오려나 할때까지 마이너를 걸어야하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나에게는 견디하는 절망이 있습니다. 내 의지가 환경에 의해 지배된다거나 하지 않는 에 거절당하거나 혹은 나만 아하는 무엇평생 나만 좋아하게 되어버린 일들입니다. 이 모두는 고달프게도 나사소한 자존감이 스스로를 절시키는 시들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굳이 환경을 전복하고 타자에게 강요되는 일들로 채워지는 것 만큼 피로한 일은 없을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이 노래로 자주 위안을 받아왔습니다. 그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 중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그저 여러번 듣고 더 듣는 것입니다. 쿵쿵하며 떨어지는 날벼락같은 순간들에서도 다시 끌어올려주는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반복됩니다. 주변이 서서히 축축해지며 울먹여도 가파른 부암동 언덕은 어차피 끝까지 올라가야지만 우리집이 나옵니다. 모든게 다 내 맘대로 되진 않을거라고 합니다. 나의 의지대로 세상만사가 흐르면 퍽이나 좋으려나. 그렇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계획한대로 이루어 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루하고 평이할까. 지배자가 없는 아나키스트로 굳이 내버려 둔다면 항상 선구자이면서 도태된 자신에게 실망할테지 하며 쓸데없는 고민을 시작할 때 쯤,  노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합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듣다보면 이 노래가 주는 지속적인 강요와 위안이 나로 하여금 모든 환경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박자감은 통일되어 엠씨스퀘어처럼 나만의 백색소음이 됩니다. 

 

 어차피 모두는 각자의 박자감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그 절망이라는 것도 그 다름이라는 템포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의 변태인것 같습니다. 당신이라는 이 2인칭의 시선은 우리 모두를 존재하게 합니다. 내가 너를 가리키고 너는 나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시간을 걸어야할 수 밖에 없는 진공에 갖히게 됩니다. 천상 서로의 박자감에 맞춰 지내는 통에 1인칭은 무색해 집니다.

 그 진공 속에서 나 편하자고 듣는 이 노래는 사실 그냥 다른 이에게 가장 추천해 주고 싶은 노래입니다. 반복해서 듣는것을 가장 선호한다곤 하지만 사실 한번만 들으면 노동이든 망상이든 끊겨버리는 나의 쥐꼬리만한 인내를 포장하는데 쓰임이 용이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너와 나 그리고 그와 그들의 모두 다른 박자감을 이해하며 공존해야 한다면 장기적으로 나를 찾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나의 당신의 노래를 설명하다보니 부끄러워서 또 다른 절망의 카테고리가 생길 것 같습니다만, 그저 모두가 모과이의 음악을 들을땐 각자가 2인칭이 아닌 귀대명사로서의 당신이 되면 좋겠다라는 바램입니다. 이 정도 마이너를 걸었으면 도착할때가 다 됐습니다.  

 

백현주, 디오와 설치를 주로 하는 미술 가.

 

 

 

 

2022년 2월 19일 토요일

뉴노멀 시대의 휴가 꿀팁

스터디 카페가서 아이패드 보며 

석류쥬스에 얼음 타먹기

찜질방 느낌 나네여

2022년 2월 5일 토요일

부헨발트의 동물원

 부헨발트의 동물원


백현주

 아름다운 바이마르 시내 가까운 곳에 너도밤나무숲이라는 뜻의 부헨발트가 있다. 그곳을 가는 길은 참으로 잘 닦여 있는데 무리해서 잘 닦여 있는 도로는 어느 나라든 항상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이므로 묻지 않기로 한다. 부헨발트는 나치가 건설한 가장 큰 강제 노동 수용소 중 하나이다. 슈츠슈타펠(SS)은 1937년 7월, 독일 바이마르에서 북서쪽으로 단지 5km 떨어진 곳에 부헨발트를 개소하였다. 고전주의의 고장, 바이마르에 사는 독일인들은 그렇게 가까운 곳에 강제수용소가 있었던 것을 전쟁이 끝나고 난 후 그제야 알았다고들 한다.

 

 모든 수용소는 각 수용소만의 슬로건이 있는데 이는 입구에 적혀있다. 문에는 내부에서 읽을 수 있게 ‘Jedem das Seine'라고 적혀있다. ‘자신이 대우 받을 만큼 받는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당신의 삶의 가치는 이 안에서 받는 만큼이라는 뜻이다. 부헨발트는 절멸 수용소가 아닌 노역 수용소였지만 이는 노동을 통한 절멸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유를 알고 도착했다. 일을 할 사람, 일을 시킬 사람 그리고 이미 도착하기도 전에 죽은 모두가 말이다. 유난히도 해가 밝은 날에 도착한 나는 그 넓은 곳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땅이 주는 절망감에 쉽지 않은 걸음을 계속했다. 절망감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이미 패망을 느끼고 모든 증거를 인멸한 다른 수용소들과는 다르게 유난히도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생체실험부터 시작해서 소각장까지 모든 곳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다. 평범해 보이던 돌 터에서도 오디오 가이드가 내 귀에 진실을 설명해 주는 순간 갑자기 모든 곳이 흑백으로 변다. 그 중, 내 몸 모든 구멍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오는 기분이다. 그렇게 내 콧속에 피비린내가 없어지지 않던 몇 시간 후 출구로 나가기 직전 멈춘 곳에서 피비린내가 갑자기 싹 사라졌다. 철창 밖에 또 다른 철창이 보인다. 동물원이다. 

 

 나치는 수용소 관리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수용소 옆에 동물원을 만들었다. 소규모의 동물원은 화려하진 않지만, 새장과 곰, 원숭이들이 있었다. 남아있는 사진을 보면 나무와 물통이 내부에 있고 두 마리의 곰들이 재롱을 부리듯 서로를 안고 있다. 동물원은 그들 상식엔 기분이 나쁘라고 세운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자존심에 모멸을 심어주는 행위로 나치는 스스로 가족까지 동반했다. 관리원의 가족들은 레저 삼아 동물들도 구경하고 아름다운 너도밤나무숲도 구경했다. 여러 층위의 창살 밖에 이들이 존재했다. 구획은 어디가 내부이고 외부인지 명확했다.

 

동물원의 창살 밖, 건너의 창살 안 사람들은 동물을 구경하는 자신을 향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향해 쓰여진 글귀 ‘Jedem das Seine’을 번갈아 보며 오늘 그들의 노동이 창살 밖의 창살 안 동물들만큼은 대우받을 정도였을까. 그 동물들과 자신 중 누가 더 자신의 가치를 합당하게 인정받고 있을까. 창살 안에서 던진 나의 질문들은 아무리 던져도 이 구획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가 안에 있고 어디가 밖인지 모를 그 정체가 나 스스로인지 바깥의 나치인지, 그 바깥 안의 동물들인지 혼란은 더해졌다. 그 구획은 어디가 내부이고 외부인지 불명확해졌다.
 
내가 동물원을 바라보는 그 순간, 더이상 피비린내가 나지 않았던 이유는 이 곳이 실이 아닌 현실이 었기 때문이다. 초현실은 고통이나 절망 또한 타자화 되어 자신이 감당하는 현재가 슬픔이 아닌 통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렇게 부헨발트 안에서 동물원을 보았다.

 

 

2022년 1월 3일 월요일

2022년

하찮은 일들과 마음 쓰린 일들.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들 밖에 없다. 

그들이 떠나거나 떠날 예정이거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때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다.

마이가 우리집에 새해를 보내러 왔다가 기차역에 다시 데려다 주러 간 날, 어제.

빨래를 하다 스피커에서 벼랑위의 포뇨가 나와서 너무 많이 울었다.

미안하고 내가 자세히 더 가까이서 보지 못해 또 미안해.



2020년 4월 24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