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7일 토요일

프랑크 푸르트 다녀온 이유와 소감


1. 국제교환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된 동기 및 본인이 다녀온 레지던시 지원 이유
 작가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람들이 되는 과정을 주로 지켜보며 이와 관련된 단체나 사회가 거주하는 지역과 현실, 대중매체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최근 국가에 의해 민통선 내로 이주된 집단을 기록하고 작품화 한 <기만과 방첩>, <양지리 디렉토리> (2018 광주 비엔날레 전시) 이 대표적으로, 이는 현재 대한민국이 전쟁과 분단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관광화를 통해 소비되는 죽음의 이익구조를 은유화 하여 제시하였습니다. 그 후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지역의 국가적 통솔과 이념, 정치세력화를 리서치 하며 이북5도청 관련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북5도청은 한국전쟁 후 남한이 차지하지 못한 미수복지역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산하의 정부 기관입니다. 우리의 영토이지만 북괴에 의해 불법으로 점령당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헌법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1962 년 제정·공포된 ‘이북 5 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설치 근거를 두고 있다.) 실향민 1 세대 지원 및 2·3 세대 육성, 이북 5 도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 보존과 민족 동질성 회복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내부에는 북한 지명을 딴 도지사, 시장, 면장까지 모든 직책이 존재하고 이는 주로 보수단체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며 나름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이북5도청을 오가며 리서치 중 눈여겨 본 지점은 최근 독일의 실향민 단체와 MOU 를 맺고 독일의 통일 후 모습을 자신들의 미래행보라고 예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작가는 독일 실향민중앙연합회 (BdV·Bund der Vertriebenen·이하 BdV)를 방문, 인터뷰 및 시각작업화 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레지던시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이북오도청이 실향민을 대표하는 집단으로서 극우성향을 나타내는것과 비슷하게 독일의 BdV 실향민연합회 또한 극우 성향의 집단입니다. 작가는 실향민이라는 이름으로 전쟁 후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극우화되는 이념 변화의 기록을 양국을 통해 작업하고자 했습니다. 국가 혹은 시스템에 의해 이주되어 영토가 없이 자주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연극같은 무대는 어떠한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리서치하고자 이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 레지던시 주변환경과 시설 설명
 바시스 레지던시는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심인 Bahnhofsviertel에 위치해 있습니다. 중앙역은 걸어서 15분 거리로 가까우며 마인강변도 멀지 않습니다. 바시스는 두개의 건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국제 교환 레지던시 작가는 사무실이 함께 있는 메인 건물2 (현지로는 1)에 위치해 있습니다. 메인 건물은 전체 5층으로 70여명의 작가들이 스튜디오로 사용하며 현지 작가들은 스튜디오 내에 상주하며 생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내는 동안 건물은 공사중이어서 사용할 수 없었지만 1(현지로는 지상층)에 전시장과 리딩룸이 있습니다.
 
작가가 지내는 거주시설과 작업실은 분리되어 있으나 같은 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스튜디오 같은 형태의 거주시설은 침실공간과 부엌이 파티션으로 나뉘어져 있고 화장실이 내부에 있습니다. 필요한 대부분의 전자제품은 다 구비되어 있으며 저의 레지던시를 지켜준 아이비 화분도 함께 있었습니다. 3개월간 무려 한척도 훨씬 넘게 자라주었습니다. 작업실은 크기가 혼자 쓰기에 적당하고 천장이 높습니다. 큰 창문 덕에 채광이 좋아 작업실에서 지내는 동안 책을 읽거나 손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일을 하기에 적당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방으로 가는 것이지만 저만 그 건물에서 상주하는 사람이라 거주하는 방에서 작업실로 나갈때는 출근하는 느낌도 들고 좋았습니다. 인터넷이 느린것은 한국을 떠나 어느나라에 가든 예상하는 기다림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가끔 아예 끊겨버리면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레지던시에서 제공하는 자전거를 타면 왠만한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고 지하철에 싣고 근교로 가기도 편리했습니다. 은행의 도시답게 유럽 어느 대도시에서도 느끼지 못한 자본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뭔가 도시 구석구석 숫자가 흘러다니는 느낌이라고 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점심시간에 도시를 가득 채운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존재하지도 않는 숫자를 어지럽게 만들어 내는 사람들, 혹은 영화 매트릭스의 도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3. 교환입주기관에서 제공된 프로그램과 참여한 프로그램 소개세부 지원사항 구체적으로 서술
① 아티스트 토크 겸 오픈스튜디오
 레지던시에 도착 후 실무를 진행하는 직원과 지낼 기간동안 해야하는 몇가지 일정을 논의 합니다. 이중 아티스트 토크 겸 오픈스튜디오는 도착 후 한달 정도 뒤에 작가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작업을 진행해 왔는지,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떤게 있는지 편안하게 얘기하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BdV의 헤드쿼터가 있는 본에서 여러가지 책자와 물품들을 가지고 와서 참고자료로 제공하였습니다.  
② 프로젝트룸 이용
바시스의 다른 건물 1층에는 프로젝트라움 Projektraum이 있습니다. 작가들이1주에서 길게는 2주 정도 빌려 말그대로 프로젝트형태의 작업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이 곳에서 전시를 하게될 시 바시스에서 작업지원금을 500유로 받게 됩니다. 지원금은 사무실에 물품을 신청하거나 물품 구입 후 영수증을 주는 형식으로 차감됩니다. 프로젝트라움은 전시장이라기보다 건물로 들어가는 복도, 다른 작가의 작업실로 들어가는 입구 정도로 생각되는 공간입니다. 이 곳에서 보았던 다른 전시들은 스쾃처럼 해프닝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레지던시를 마무리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일주일 전 4일간 약간의 프로덕션을 보여줄 기회로 이 공간을 사용하였습니다. 공간을 사용하는 기간동안 작가는 스스로 지킴이를 하고 건물의 입구를 관리합니다.

4. 현지 진행 프로젝트, 작품, 전시 관련 설명
 레지던시 기간의 대부분을 BdV의 일정에 함께하고 인터뷰를 다녔습니다. 헤드쿼터가 있는 본Bonn은 쉴레지안 (옛 독일령, 현재 독일령 괴를리츠를 제외한 모든 영토가 폴란드령이다.) 향우회가 위치해 있는곳이기도 해서 왕래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센터가 있는 베를린, 분단의 역사에서 중요한 도시인 괴를리츠까지 독일실향민연합회의 중요 행사들에서 함께 대동하고 그들의 촬영을 도왔습니다. 레지던시에서 어떤 작품을 완성하기보다 기간에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보여준 것이 현지에서 진행한 <finger points> 였습니다. 어떠한 일이든 중요한 것이나 설명을 덧붙이고자 할때마다 검지손가락을 써서 가르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착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지점을 이야기 할때 그 곳을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중요도의 차이일 수도 있고 없어질 미시적 수다일 수도 있는 여러가지 관점을 통해서 손가락질 되는 그 포인트는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유의 방식으로 다시 시사되야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커다란 손가락을 만들고 그 검지손가락 끝에 롤러를 달았습니다. 그 손가락 끝 롤러에 흰 페인트를 뭍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가르키면 그 곳은 지워질 수 있도록 제작하였습니다. 세개의 큰 손가락들은 사람들이 동시에 들었을때 효과가 가장 컸습니다. 대모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상과 설치작업이 견고히 완성이 되면 손가락을 더 크고 많이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5. 교환입주기관에 체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개인적으로 방문한 장소, 전시, 이벤트 등)


 
리서치 과정에서 방문한 몇군데 도시들 중 바이마흐와 괴를리츠가 기억에 남습니다. 바이마르Weimar는 바우하우스 100주년 기념이라 괴를리츠에 가는 길에 일부러 들러보았습니다. 어릴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들었던 바우하우스, 특히 하우스 암 호른Haus am Horn을 보기위해 갔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의 첫번째 건축프로젝트인 하우스 암 호른은 집합주택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 항상 중요하게 다가온  건축물이었습니다. 삶이라는 것을 기능하게하고 그것 외의 모두를 배제하는, 대량화 가능한 모델링이라는 점에서 저는 항상 직접 눈으로 보고싶었던 곳이었습니다.
 
괴를리츠Gorlitz는 폴란드와 국경도시로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사이에 두고 있다고 하기에도 어색한 이 곳은 독일에선 괴를리츠라고 불리지만 폴란드의 즈고를렉Zgorzelc로 불리는 슐레지안 영토일때는 하나의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새롭게 임명되는 괴를리츠 시장의 취임식에 초대되어 CDU 정당 모임에 참여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즈고를렉의 시장, 미하엘 크레쉬머 작센 주 총리등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낸 시간이 제 작업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작센주에서는 예민하고 중요한 선거기간이어서 지역의 분위기가 더 특이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습니다.
 
전시공간 중에는 마인강 다리 중간에 위치한 Portikus라는 전시공간이 인상깊었습니다. 강 중간 작은 섬 위에 지어진 이 공간은 올라퍼 엘리야슨이 채광 창 디자인을 해서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원래 철물점을 좋아하는 저는 hornbach 에 자주 방문했습니다. 레지던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마인강을 따라 40분가량 가면 나오는 Fechenheim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 구입하였고 자전거에 실어 다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쉽고 그리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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