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세종문화회관 2층에 올라가서 1층을 내려다 보곤한다.
세종문화회관은 나에게 서울 이라는 곳이었고 지금은 옆집이 되었다.
어린시절 음악을 배울때, 부산문화회관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거나, 성악을 하면 너무 설레고 벅차고 했었다. 나의 세계에서 우리의 꿈은 세종문화회관이었는데, 텔레비전으로 보는 황금색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의 상징이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그들의 궁전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꼭 한번은 연주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제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보니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거장들만 연주하거나 미스코리아만 걸을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 자신이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러 오거나, 삼촌이 연주 하는 것을 들으러 오거나, 엄마가 엄마 친구들과 취미로 배운 노래를 부르는 곳이었다.
작년 평생을 벼르던 서울시민합창단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그 사람들의 많은 따스함이 어찌나 좋던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어제 2층에서 1층을 내려다 보는데, 이 날도 어김없이 사람들의 잔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모두 단정히 빗은 머리를 하고 손에는 꽃다발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백남준의 텔레비전 사람 앞에서 모두 함께 연주한 친구들과 사진도 한컷씩 찍고.
있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가 갖고 있던 노란장미 한송이를 한 할머니가 잠시만 하더니 텔레비전 사람 앞에 선 아이의 빈 손에 쥐어줬다. 그리고 셔터가 눌러진 후 다시 받아 그 아이에게 돌려주었다. 할머니는 멋쩍게 웃고 참 미안해 했다.
그런데 또 다시 사진을 찍자는 기사님의 얘기에 할머니는 다시 구경하던 아이의 손에서 장미를 빌려 자신의 손자에게 쥐어 주었다.
셔터가 눌러지는 내내 할머니는 얼마나 장미주인 아이에게 미안했을까?
그리고 평생 할머니는 꽃 한송이 사주지 못한 그 마음에 얼마나 아파할까?
손자는 커가면서 내내 그 기억으로 할머니를 얼마나 창피해 할까?
어릴때 긴 기간동안 듀오로 피아노 연주곡을 연습한 적이 있었다.
물론 콩쿠르에 나가기 위함이었는데, 그렇게 항상 같은 곡을 매일 매일 연습했었다.
나는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하는 아이었는데, 그 곡만은 자연스레 익혀져
엄마에게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콩쿠르 날을 꼭 기다리고 연습했다.
콩쿠르가 있는 주 월요일에 엄마가 이번주말은 사촌언니의 결혼식에 가야한다고 했다.
나는 금요일까지 연습하고, 콩쿠르에는 나가지 못했다.
사촌언니는 5년뒤에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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