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3일 수요일

‘실정법’의 바위는 부서지리라

[보도그뒤] ‘실정법’의 바위는 부서지리라

군사법정과 공개토론회장,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같은 날의 두 가지 풍경

지난 5월31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싸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사건이 벌어졌다. 한쪽은 비통한 침묵에 휩싸였고, 다른 한쪽은 토론회 열기로 뜨거웠다.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피고인들의 신념에 따른 행동도 높이 삽니다. 하지만 재판부로서는 실정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윤리·정치적 병역거부도 존중돼야”

오전 11시 경기도 용인의 군사법원. 선고 배경을 설명하는 이인상 군판사(소령)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집총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18명에게 관례대로 3년형을 선고한 바로 뒤였다. 군판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방청석 곳곳에서는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지난 5월19일 열린 1차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선고를 연기한 터라 기대감이 컸던 탓이다.
변론을 맡았던 임종인 변호사는 “무죄는 아니더라도 3년형을 그대로 선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항고해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재판을 마치고 나온 여호와의 증인들은 “비록 판결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례적으로 선고 배경을 설명하는 등 군당국의 태도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며 서로 위로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 9명이 최초로 변론을 맡아 주목을 받아온 이 재판은 ‘선고 연기’라는 미완의 성과를 남긴 채 일단 매듭지어졌다.
같은 날 오후 2시. 종로성당 3층 강당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제로 한 최초의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평화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 9개 사회단체들이 공동 주최한 ‘양심·종교의 자유와 군 대체복무를 위한 토론회’였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의 첫번째 발제자는 동국대 법학과 조국 교수가 나섰다. 조 교수는 “세계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핵심 사안이었음에도 한국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만의 문제로 방치돼왔다”며 발제를 시작했다. 이어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특정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종교를 믿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평화주의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 교수는 ‘특정 신념의 본성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차별하지 말 것’을 권고한 95년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안을 예로 들며 종교적 양심 외에 윤리적, 정치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할 권리를 강조했다.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된 조 교수의 발제에 이어 임종인 변호사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을 소개했다.
두 사람의 발제가 끝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증언과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기독교계 인사로 정진우 목사가 토론자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 목사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고민하면서 종교가 기성 이데올로기를 유지·강화하는 데 일조해온 점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종교계의 관심을 촉구한 그는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치부하고 이 문제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계가 소수자 인권보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유엔 인권위원회 활용” 공감 얻어

증언자로는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채의구 목사 등이 나섰다. 채 목사는 63년 입대해 집총거부로 3번의 재판을 받고 4년여를 복역한 경험을 얘기하며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호소했다.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신자들은 위생병 등 비전투 요원으로 복무하기를 원한다. 더구나 이들은 안식일로 여기는 토요일에 집총을 거부하는 탓에 70년대까지 여호와의 증인과 더불어 감옥으로 보내졌다.
증언이 끝난 뒤에도 활발한 토론이 계속됐다. 토론 막바지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다룰 전문가집단을 형성하는 과제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유엔 인권위원회를 활용하는 방안이 제안돼 공감을 얻었다. 토론회를 준비해온 평화인권연대는 “앞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뿐 아니라 징병제의 전반적 문제를 다룰 토론회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행사를 마무리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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