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6일 화요일

시작과 끝이 없고 하나로 통한다

시작과 끝이 없고 하나로 통한다

한옥 공간은 순환한다. 막히지 않는다. 한국인의 민족 정서인 갈림길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은 좁은 복도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갈래이다. 형식도 여러 가지이다. 방끼리도 통하고 마당과 대청마루를 건너기도 한다. 사방으로 적당히 뚫려있고 적당히 막혀있다. 막으면 방이 되지만 그 막음이란 것이 콘크리트 벽처럼 앙 다문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지 틀 수 있다. 트면 길이 난다. 방과 방 사이에 문이 난 경우도 제법 된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은 하나의 작은 여로이다. 인생이 여행길이고 여행길은 갈림길이듯 집은 인생을 닮아 수많은 갈림길을 가득 담고 발걸음을 흐트러트린다.

 

한옥 공간이 순환한다는 것은 시작과 끝이 없고 하나로 통한다는 뜻이다. 원통이다. 원은 완전도형이라 해서 동서양 모두에서 최고의 상태로 쳤다. 하늘을 닮은 이미지로 받아들여 신성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부분 형상을 모방해서 둥근 천장을 짓는 선에서 그쳤다. 한옥은 이것을 공간에 적용해서 막힘없이 둥글둥글 도는 동선구조로 만들어냈다. ‘원’에 ‘통’을 결합해서 ‘원통’한 공간으로 만들어낸 경우는 한옥밖에 없다. ‘원’한 공간은 자연히 ‘통’하게 되어 있으니 한옥은 ‘원’이라는 것에서 기하학적 형상을 읽은 것이 아니라 ‘통’하는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김동수 고택 안채 ‘田’자 공간 속에서 빙빙 도는 구조가 방 하나에서 일어난 경우이다. 단순히 도는 것이 아니고 방 하나에서 사방팔방으로 동선이 닿는다는 뜻이니 집 전체로 보면 딱히 막힘이 없이 원융무애한 공간의 씨앗을 이룬다.

 

 

원통이라는 개념을 쉽게 풀어 쓰면 180도 유턴하는 일 없이 직각으로만 꺾으면서 오던 길을 되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막다른 골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솟을대문에서 시작한 동선은 제일 먼저 행랑마당으로 이어지면서 사랑채를 맞이한다. 사랑채에서는 방의 앞문으로 들어간 뒤 다시 뒷문으로 나와 뒷마당에서 직각으로 꺾어 집을 돌아 처음 위치로 돌아올 수 있다. 대청으로 오르면 방으로 들어간 뒤 옆방으로 잇거나 방 밖으로 빠져 나오는 식으로 다시 대청 앞 댓돌로 돌아올 수 있다. 대청 뒤창도 완전한 문은 아니지만 사람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어서 뒷마당에서 직각으로 꺾은 뒤 집을 돌아 되돌아올 수 있다. 누마루도 마찬가지이다. 삼면에 문을 냈으며 퇴를 발코니 겸 통로처럼 달아서 누마루 한 곳에서만도 빙글빙글 돌 수 있게 했다.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면 비슷한 방식으로 유턴하지 않고 온 집안을 빙글빙글 둥글둥글 돌아다닐 수 있다. 원통에 대입시켜 보면, 마치 원형 공간 이곳저곳에 적당히 칸막이를 쳐서 막힘없이 두루두루 도는 동선을 확보한 뒤 원형 윤곽을 누르고 다듬어서 육면체로 만든 것 같다. 물론 한옥의 형성과정을 보면 이런 내파 분할과 반대인 외파 증식이긴 하지만, 공간 개념과 형식을 유형화하면 이런 직설적 원통에 비유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원통’하다. 여기저기 문을 열어놓은 한옥을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해면체를 보는 것 같다. 한옥을 하나의 큰 상자라고 생각하고 물을 부으면 그 흘러나가는 경로는 너무 분산적이고 불규칙해서 뭐라 형식화해내기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일정한 축과 방향을 따라 몇 줄기로 물이 모아지는 서양식, 현대식 주택개념과는 분명 반대편에 있다.

 

 

향단 집이 ‘원통’해서 순환한다는 말을 단순히 생각해보면 집에 온통 구멍이 숭숭 뚫려 물을 부으면 사방팔방으로 줄줄 샌다는 뜻이다. 물이 새는 길은 곧 동선이다.

 

 

기가 통해 건강한 한옥의 순환공간

왜 이렇게 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제일 먼저 실용적 목적이 있다. 원통은 바람 길 같은 환경요소에 유리하다. 물을 뚫어 썩음을 막고 병을 쫓아 악을 차단하는 상태가 통이다. 나무가 막히면 좀벌레가 생기며 풀이 막히면 거름이 되는데 이것을 막아주는 것이 통이다. 창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과 ‘통’할 때에만 방안에 사는 사람의 정신과 몸과 마음 모두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집에 숨통을 터주니 그 숨통은 곧 사람에게 숨통이 되어 돌아온다. 집과 사람은 닮게 되어 있다. 본래 하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집이 사람을 닮으니 식구들 사이의 접촉 가능성 및 그 형식을 늘려준다. 의사소통방식을 다원화한다는 뜻이다. 집의 중심을 벽을 이루는 물질로 보지 않고 벽 사이의 공간을 오가는 발길로 본 것이다. 집의 요체를 벽이 한정하는 면적으로 보지 않고 발길에 따라다니는 식구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로 본 것이다. 벽으로 막아 각자 면적을 깔고 앉아 안으로 꽁꽁 걸어 잠그는 집은 물심양면 모두 건강할 수 없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끼리 단절되어서 기가 막힌 상태이다. 소통과 교류가 끊기니 그 집안의 분위기와 가풍은 말 그대로 ‘기가 막히게’ 된다. 한옥은 이것을 경계했다.


대가족제도 때 집이라서 더 그랬다. 가부장제 집이기 때문에 엄격한 위계는 필요했지만 이와 동시에 식구 수가 많은 대가족 집이었기 때문에 위계만 고집하다간 자칫 ‘기가 막힌’ 집이 되기 쉬웠고 이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통하고 저렇게도 통하게 만들었다. 삼대 십 수 명이 한 집에 살다보면 식구들 사이에 일어나는 소통과 교류는 경우의 수로 셀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얼마나 많은 만남과 모임이 일어날 것이며, 얼마나 다양한 소통과 모의가 필요할 것인가. 드러내고 싶은 소통도 있었을 것이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교류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적절하게 복합적이고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공간구조가 필요한데, ‘원통’한 공간이 최고였다.

 

순환하는 한옥 공간에서는 동선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이 자체가 일단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동에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이동의 목적과 성격, 이동하는 사람의 상황과 마음상태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각각에 맞는 동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기 때문이다. 한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도시이자 우주이다. 수많은 길이 나고 이동과정이 다양하다.


 

관가정 집이 ‘원통’해서 순환하기 위해서는 복잡만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주축이 되는 중첩공간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돌아가기와 질러가기

일부러 돌아갈 수도 있고 질러갈 수도 있다. 사람이 집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돌아가야만 하는 사정과 여유가 생기게 마련이며 반대로 질러가야 할 급한 형편도 벌어진다. 둘을 구별해서 할 수 있게 해주면 그 공간은 최고이다. ‘아흔아홉 칸’의 대저택에 이동 동선이 일직선 복도밖에 없다면 이는 오히려 기능적이지도 못하게 되며 더더욱 정성적(定性的)인 집은 절대 될 수 없다.

 

한국인 특유의 상대주의 국민성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한국인은 한 방향으로만 굵고 곧게 난 길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로와 샛길, 갈림길과 곧은길이 적절히 섞인 ‘재미있는’길을 좋아하며 이런 길을 즐긴다.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흔히 한국인의 파벌을 얘기할 때 쓰는 말이지만 잘 따져보면 산하가 이루어지는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다른 것이 모이니 이합이요 모였다 흩어지니 집산이다. 종으로 합하니 합종이요, 횡으로 이으니 연횡이다. 본디 산줄기와 강줄기가 이렇지 않던가.

 

 

윤증고택 사랑채 원통과 순환을 좁은 의미로 보면 ‘田’자 공간 속에서 빙빙 돈다는 뜻도 된다. 이런 구조는 채 하나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방 하나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한옥의 원통 공간에 나타난 갈림길과 선택권은 이런 자연의 형상을 옮겨 놓은 것일 수 있다. 한옥에 동선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매우 과학적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동선이 여러 개라는 사실은 이동 과정에서 느끼는 경험의 종류가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혜의 선물이다. 시간 따라, 형편 따라, 기분 따라, 계절 따라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이동 중간에 보는 장면이 각각이고 맡는 냄새와 듣는 소리 또한 제각각이다. 이것들을 조합해서 즐기면 된다. 집 안에서의 이동이 즐김과 감상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생활살이에서 정말로 큰 축복이다.

 

흔히 한옥이 복잡하고 불편한 것으로 알지만, 한옥에는 지름길이 있다. 한옥에서는 급할 때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 효율의 가치를 절대 무시하거나 모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다만 효율의 존재를 다른 다원주의 요소 속에 묻어 꼭 필요할 때에만 꺼내 쓰게 했을 뿐이다. 효율 하나에 목매달아 너무 소중한 많은 것들을 생매장시키는 우를 피해가는 지혜이다. 효율을 살리는 것이 기능이라고 했을 때 한옥은 이처럼 분명 기능적이기도 한 것이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유교의 ‘예별이’

멀리서 한옥의 전경을 보면 지붕을 통해 집의 전모를 가늠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약간의 법칙이 있다. 수평지붕이 두 장이나 세 장 위아래로 겹치며 그 사이로 이것보다 하나 적거나 동수인 삼각 박공이 솟아오른다. 이런 구성은 이유가 있다. 가부장적 계급사회였던 유교시대 때 신분 위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위계는 건축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지붕의 형식과 크기도 중요한 요소이다. 지붕이 더 크고 높으면 위계가 높아지는 것은 상식이려니와 형식에서는 팔작지붕맞배지붕보다 위계가 높다.

 

이것은 그대로 한옥을 구성하는 세 계급인 하인, 여자 주인, 남자 주인에 대응시킬 수 있다. 하인의 공간인 행랑채는 높이가 제일 낮은 맞배지붕을, 여자 주인의 공간인 안채는 중간 높이의 팔작지붕을, 남자 주인의 공간인 사랑채는 높이가 제일 높은 팔작지붕을 각각 갖는다. 안채와 사랑채의 팔작지붕은 높이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박공의 크기에서도 차이가 나서 보통 사랑채 것이 더 크다. 한옥을 멀리서 보면 지붕 여러 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계급질서를 충실히 반영한 데 따른 결과인 것이며 찬찬히 뜯어보면 집의 구성을 읽어낼 수 있다.

 

 

선교장 전경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각각의 계급에 합당한 건축적 위계를 가지며 예별이를 표현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가족다운 어울림을 동시에 보여준다.

 

 

건축을 이용해서 계급질서를 반영하는 구성을 미학에서는 사회미 혹은 사회적 형식미라고 부른다. 동서양이 공통이다. 서양에서는 주로 고전 오더가 이런 역할을 한다. 독립원형기둥이 반원 벽기둥보다, 반원 벽기둥이 사각 벽기둥보다 각각 위계가 더 높으며, 같은 사각 벽기둥 사이에서도 절반 돌출이 사분의 일 돌출보다 위계가 더 높은 식이다. 사회미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 질서, 도덕률, 법도 등의 문명 가치를 건축으로 표현해서 공고히 해주는 미학을 통칭하는데 동서양 모두 주로 계급 사회 때 강하게 나타난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지배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봉사의 성격을 띠기 쉽다.

 

한옥에 나타난 지붕의 위계 차이를 동양미학으로 환원하면 ‘예별이(禮別異)’의 유교 가치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별이’란 말 그대로 ‘예절은 차이를 구별하는 기능을 갖는다’라는 뜻인데, 계급질서를 바탕에 깐 유교가치의 대표적 예이다. 복장, 의복, 음식 등 일상생활의 모든 점이 계급에 따라 다른데 집도 그 중 중요한 요소였다. 집을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고 홍보하는 통로로 활용한 경우이다. 하인 계층은 집의 구성에 나타난 차이를 보면서 자신의 계급적 처지를 깊이 깨달아 말썽 안 부리고 지배계급에 더욱 순종했을 것이며 같은 논리가 여성과 남성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사회적 안녕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어울림의 미학

사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얘기이다. 지위가 높고 재산이 더 많은 사람이 더 크고 더 화려한 집에 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세상의 이치이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어떻게 조형적으로 다듬어내느냐에 있다. 한옥은 계급 차이를 강압으로 공고히 굳히는 것을 경계했다. 그 대신 ‘어울림’이라는 균형 잡힌 조형처리로 잘 풀어냈다. 구성원들 사이를 구획 짓거나 가르지 않고 서로 잘 어울리게 했다. 높은 위계의 공간이 낮은 쪽을 억누르거나 진압하지 않고 한 울타리 내에서 같이 어울리게 했다. 상하 구별이 분명하고 남녀가 유별했던 실제 생활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집을 기준으로 보면 이런 계급 구도를 중화시켜 최소화하고 싶어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국민성이나 조형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으며 그 바탕에는 유교의 또 다른 가르침인 ‘인(仁’)’의 정신과 이것을 ‘정’의 문화로 발전시킨 우리의 정서가 깔려있다.

 

 

안동 귀봉종택 위계에 따른 건물 크기의 차이는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어서 지형과 집안 분위기에 따라 안채가 중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어울림’은 한국인 특유의 사회적 형식미이자 조형의식이다. 큰 것 하나로 뭉치는 것보다 작은 것 여럿으로 나눈 뒤 그것들을 이리 짜고 저리 모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조형의식이다. 통합보다는 조합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한국 전통건축에 거대구조나 거석구조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을 산업기술력이 열악하거나 배짱이 없는 탓으로 돌리는 시각도 있으나 조형적 선호에 기인한 점이 크다. 한옥이 대표적인 예이며 사찰도 산지에 위치한 탓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긴 길이에 걸쳐 여러 전각으로 나누어 구성한 분산적 특징이 강하다. 왕궁도 서양과 비교해보면 여러 영역과 수많은 전각으로 나눈 뒤 이것들을 재조합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한옥을 예로 보면, 공간 구성과 동선에 나타난 다양성을 3차원 덩어리로 환산한 것으로 보면 된다. 통합이 아닌 조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정한 나눔을 전제로 해야 되기 때문에 자칫 파벌이나 분열로 빠질 위험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합은 통합뿐 아니라 분열과도 엄연히 다른 또 하나의 독립적 조직 원리이며 이것을 조형적으로 구현하면 어울림의 미학이 된다. 합종연횡과 이합집산. 보통 한국인의 파벌의식이나 분열다움을 부정적 의미로 일컫는 말이나 원래 뜻은 조합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 이치를 일컫는 중립적인 말이다. 이 두 말을 잘 보면 ‘합’, ‘연’, ‘합’, ‘집’ 등 모인다는 뜻의 말이 주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만 모이는 방식에서 중앙 통제에 의해 큰 한 덩어리로 통합되느냐 아니면 구성원 각각이 일정한 힘을 가지면서 힘겨루기와 타협을 통해 조합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추사고택 안채가 안 행랑채와 중문을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예별이에 따른 계급 차이를 반영하지만 다정한 어울림의 미학도 잊지 않는다.

 

 

인과 정

한국다운 어울림을 조형적으로 환산하면 절묘한 균형감이 된다. 한옥의 전경을 보면 크고 작은 여러 덩어리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어울리고 있다. 큰 것은 너무 크지 않게, 그러나 작은 것도 너무 작지 않게 적절한 범위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구별하지만 궁극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어울려 흥겨운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흥겨우면서도 안정적이라는 상반되는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는 양면성이 한국의 조형적 균형감의 요체이다.

 

언뜻 보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각자의 조형다운 존재를 명확히 드러내면서 제 몫을 잊지 않고 챙겨서 서로간의 경계를 잘 짓고 있다. 크고 작은 모든 요소들이 개별다움과 존재이유를 잃지 않고 잘 유지하면서 각자의 조형적 가치를 발휘해서 서로 어울려 큰 하나로 조합해내고 있다. ‘필부라도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다’는 개별성의 철학이 잘 살아있는 예이다. 심지어 뒷간조차도 담 밖에서 보면 집의 전체 구성 속에 자신의 지붕 한 장을 슬쩍 밀어 넣어 조형요소의 독립성을 당당히 확보한다. 우리말에는 오밀조밀, 아기자기, 오순도순, 옹기종기 등 개별성을 바탕으로 한 어울림의 모습을 지칭하는 부사가 발달한 것이 좋은 증거이다. 이런 말들의 뜻을 보면 모두 ‘다양한 요소가 귀엽고 정답고 예쁜 모습으로 보기 좋게 어울리며 얘기하고 논다’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갖는다.

 

 

향단 한국인의 조형의식은 거석구조보다는 큰 덩어리를 여럿으로 나눠 오밀조밀하게 조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배계층의 주거가 이렇게 자잘한 구성요소들의 어울림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한옥의 어울림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바로 유교의 ‘인’의 가르침이다. ‘인’은 중국과 우리가 사회적으로 조금 다르게 형식화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정의 문화’로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가족주의이다. 가족주의는 씨족문화와 문중문화를 이루는 씨앗이며 이것이 모여 집권층을 이루고 왕권을 지탱하는 신권(臣權)이 되었다. 한국의 정의 문화는 유교의 계급질서가 너무 삭막한 착취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한 중화작용 혹은 견제장치 역할을 했다. 전제 왕권 시대였기 때문에 피지배계층의 권익을 나라의 법으로 확보해주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지 구현하고 싶었을 터인데, 결국 사람들 사이의 정이라는 비공식적 마음 나누기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옥의 전경에서는 유교의 계급질서와 이것을 한국인 특유의 국민성에 맞게 적용해낸 두 가지 사회미를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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