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 조직원들이 정글칼을 흔들며 열댓명씩 무리를 지어 다녔다. 생존자들은 갱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다. 오지
않는 도움을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 시체로 바리케이드를 쌓아 자동차 통행을 막았다. 건물 잔해 아래서 간간이 들리던
비명은 낮은 신음으로 바뀌었고, 이내 잦아들었다. 학생들이 깔린 학교 건물의 폐허를 맨손으로 헤집던 생물교사 이브
시마(Sima·28)가 상처 난 손을 들어보이며 울부짖었다. "아무도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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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가의 시신들 유럽인도주의협회와 적십자사가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수습한 시신들을 길가에 공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내 중앙광장 '샹 드 마스'는 거대한 난민 수용소였다. 건물과 멀찍이 떨어진 공터일수록 붐볐다. 잔해에 깔려 죽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붕괴된 건물 더미에서 필사적인 구조작업을 했다. 손에 든 것은 기껏 망치와 막대기였다. 포르토프랭스 종합병원 안치소에는 시체가 1500구 이상 쌓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도로 옆 둔덕마다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도심 곳곳에 공동묘지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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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가 된 도시 포르토프랭스 시민들이 14일 흉측한 모습의 폐허로 변해버린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전신주와 주택들이 위태위태하다. /로이터 연합뉴스
국
제사회의 구호물품은 쏟아지는데 분배시스템이 없다. 활주로만 간신히 남은 포르토프랭스 공항은 이·착륙 공간이 포화 상태다. 재급유
연료는 바닥났다. 이날만 구호 물자·인력을 가득 실은 수송기 42대가 공항 상공을 맴돌았다. 오전에 착륙 허가를 일시 중단했던
공항당국은 오후 들어 다시 30분 간격으로 수송기에 한해 착륙을 허용했다. 하역에만 6시간 이상 걸리고 있다.
인접 도미니카의
프랭클린 플랑코 유엔 코디네이터는 "수천명이 땅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는데 포르토프랭스로 가는 도로 3곳이 모두 산사태로 막혔다"고
말했다. WFP 찰스 빈센트(Vincent) 대변인은 "14일 몇몇 지역에 2400명분의 식량이 배급됐다. 양동이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수준"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엘리자베스 바이어스(Byrs) 대변인은 "현재
수송 여건은 거대한 악몽"이라고 말했다. 2004년 축출된 후 남아공에 체류 중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은 구호작업에
동참하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5일 "이번 아이티 강진은 1995년 6433명의 사망자를 낸 한신(阪神) 대지진과 아주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암반이 좌우로 흔들리는 진동을 일으킨 지층면의 길이는 40㎞로 거의 같았고, 진원 깊이(아이티 13㎞, 한신
15㎞), 지진 규모(아이티 7.0, 한신 6.9) 등도 비슷했다는 것이다.
아이티 적십자사는 15일 지진 사망자를 4만5000명~5만명 정도로 추산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빅터 잭슨(Jackson)은 미국
MSNBC방송과의 회견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이 300만명쯤"이라고 말했다. 사망자가 1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전날 종적을 감춰 갖은 억측을 낳았던 프레발 대통령은 14일 포르토프랭스 공항에 나타나 "이미 7000구의 시신을 매장했다"고
말했다. 유엔은 "현재까지 유엔 직원 36명 사망, 188명 실종"이라고 밝혔다. 유엔 역사상 최악이다.
미국 LA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교민 정모(61)씨는 아이티로 들어간 뒤 15일까지 연락이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엘이구에로(도미니카공화국)=박종세 특파원 j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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